유가증권 시장에서 펀드매니저에게 '믿고 보는 둘째'였던 현대차가 '썩어도 준치'에서 '부도수표'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.
지금 여의도에서는 현대차 손절매 시기를 놓쳤다는 펀드매니저들의 한숨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.
2009년 현대차의 성장성을 보고 비중을 크게 늘렸던 펀드매니저들은 현재 현대차의 위기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.
A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3일 "원화 약세에 힘입어 현대차가 2류 메이커에서 1.5 메이커로 도약했고, 2008년에는 동일본 지진도 있었다"며 "성장성을 바탕으로 20만원대를 돌파했고, 30만원대를 넘봤지만, 각종 우려 속에서도 별로 안 빠지던 주가가 최근 이렇게 급락한 것은 소비자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쳤고 이번에 발표한 실적 수치가 이를 증명했기 때문"이라고 말했다.
그는 한때 조 단위로 현대차를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들고 있었다.
이 매니저는 "현대차가 지금까지 오는 데는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컸다"며 "스스로의 노력도 있었지만 추가적인 기술 투자나 연구 개발을 더 했어야 했다"고 조언했다.
신차 판매 증가를 위해 마케팅 조직을 강화해야 했지만, 현대차는 한전 부지를 비싸게 샀고 연비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한국 소비자가 등을 돌리게 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.
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선 글로벌 차 생산기업들이 연비에 신경을 썼지만, 현대차는 현대제철과 하이스코를 밀어주기 위해 경량화를 외면하고 더 무거운 차를 만들어냈다는 지적도 나왔다.
현대차의 선택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. 연비를 떨어뜨리지 않고 국산 차에 고비용 정책을 취하자 내수 점유율 마의 70%가 무너졌기 때문이다.
B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"지금까지는 현대차 PER 6배가 싸다고 생각했는데, 글로벌 판매 데이터가 다 낮게 나오니까 판매량이 줄어든 만큼 주가가 빠졌다"며 "유로, 엔 다 약해져 독일이나 일본이 차 값을 계속 낮추는데, 1류보다 못한 현대차의 가격이 1.5배가 더 비싸면 어떤 소비자가 용인하겠느냐"고 꼬집었다.
이 매니저는 "현대차그룹에 좋은 기회가 있었다"며 "2008년 즈음에 벌어놓은 돈을 가지고 한전 부지 사지 말고 노조를 정리하고,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면 이번 기회에 가격 정책을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기회가 없어졌다"고 강조했다.
그는 "잘나갈 때 위기 경영을 해야 하며 성공의 원인이 스스로 잘한 건지, 밖에서 잘한 건지를 잘 파악하고 취하지 말아야 한다"고 조언했다.
C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"국내외를 막론하고 판매가 안 된다는 인식에 주가가 급락했다"며 "현대차가 글로벌화되기 전에는 원화하고 달러만 약해지면 잘 팔아먹었는데, 지금 팔아먹는 곳의 환율이 약해져 가격 메리트가 없어졌다"고 꼬집었다.
그는 5년 전과 비교하면 현대차의 이익은 3배로 늘어났지만, 그때는 이익 그래프가 상향 곡선을 그렸지만, 현재는 정체구간을 지나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했다. '꿈을 먹고 사는' 주가는 이제 펀드매니저들에게 큰 기대를 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.
이 매니저는 "현대자동차의 차를 중국 자동차, 로컬 메이커가 만든다"며 "배, 휴대전화에 이어 자동차도 중국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주가는 앞을 내다볼 수 없다"고 지적했다.